선과 악에 관한 고찰
얼마전에 자유게시판에 올려준 유튜브영상 “창조된 유토피아“를 보고나서는 가끔 선과 악은 정말 반대되는 개념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흔히 선과 악을 서로 마주 보는 개념처럼 여긴다.
빛과 어둠처럼, 흰색과 검은색처럼, 왼쪽과 오른쪽처럼.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선과 악은 그렇게 정확히 대칭되는 개념이 아니다.
선은 설명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선한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버려야 하는 순간도 있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도 있다.
선은 늘 복잡하다.
의도도 봐야 하고, 결과도 봐야 하고, 맥락도 봐야 한다.
한 사람이 얼마나 선한지 판단하려면 너무 많은 조건이 따라붙는다.
그 사람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도운 것인가.
그 선행은 누구에게까지 좋은 결과를 만들었는가.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은 없는가.
그 선함은 일시적인가, 지속적인가.
이런 질문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절대선”이라는 것은 성립되기 어려워 보인다.
모두에게 선한 사람, 모든 방향에서 선한 선택, 어떤 맥락에서도 오염되지 않는 순도 100%의 선.
그런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맑은 물이 투명하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물에 먹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순수한 물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진다.
선은 그런 것이다.
너무 쉽게 흐려진다.
그런데 악은 이상하게 더 선명하다.
누군가가 타인을 속이기 위해 친절한 척을 한다고 해서, 그 친절이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기꾼이 처음에 돈을 주고 믿음을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때 선했던 것은 아니다.
그 선한 행동처럼 보이는 것조차 결국 타인을 이용하기 위한 미끼였다면, 그것은 선의 얼굴을 한 악에 가깝다.
악은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타인의 고통을 비용으로 계산하고,
타인의 신뢰를 도구로 쓰고,
타인의 약점을 자기 이익을 위한 입구로 삼는 순간.
그때 악은 꽤 분명한 얼굴을 가진다.
물론 절대악이라는 말도 조심스럽긴 하다.
사람은 복합적인 존재이고
누구에게나 사연과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악을 상대화할 수는 없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악은
원래부터 세계에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그것을 견디기 위해
절대선이라는 이름의 신을 만들었고
그 신의 대적점에 절대악이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절대악은 실체라기보다 구조일지도 모른다.
절대선이라는 상징이 생기는 순간
그 반대편에 놓이게 되는 그림자.
인간이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 만든 최종의 이름.
그래서 선과 악은 완벽히 대칭되는 한 쌍의 개념이 아니다.
선은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방향이고,
악은 우리가 떨어지지 말아야 할 바닥이다.
선은 증명하기 어렵지만,
악은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최고로 선한 사람을 고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악의 인간은 이상하게도 시대마다 이름을 남긴다.
선은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회복으로 흩어지고,
악은 한 사람의 거대한 파괴로 응축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절대선은 어쩌면 인간이 끝내 닿을 수 없는 이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절대악은 인간이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어떤 구조로 존재한다.
타인을 도구화하고,
고통을 만들고,
그 고통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선명한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긴 고찰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절대선은 모르겠다.
정의하기 어렵고, 증명하기 어렵고,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절대악은 있다.
흑자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명히 규정지을 수 있나
...
뭔가 그쪽계열이랑 비슷해보이네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명히 규정지을 수 있나
모호한 경계선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믿는 것 뿐
선과 악보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게 더 큰 의문이 들어 난
그러나 악의 정의를 찾다보면 도달하게 돼
흑자는 -악-이다